이한구(2014).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읽기. 서울: 세창미디어
(13) 포퍼는 1920년대와 30년대 초에 빈 학단이 주장하는 논리적 실증주의 철학과의 대결을 통해 우리가 오늘날 '비판적 합리주의'라 부르는 인식론과 과학철학을 발전시켰다.
(14) 즉 한 이론이 과학적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그 이론과 상충되는 관찰을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을 경험에 의해서 반증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19) 비판적 합리주의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합리적 논증의 도움으로 비판적으로 따져나간다면 진리로 점차 가까이 접근해 갈 수는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절대적 확실성에 도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앎에 대한 비판과 자기비판의 준비가 비판적 합리주의에서는 삶의 방식으로서 요구된다.
(25) 포퍼는 파시즘과 마르크시즘이라는 근대의 가장 중요한 두 역사철학이 모두 선민사상에까지 소급해 갈 수 있는 역사법칙주의에 기초해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현대의 가장 중요한 두 역사법칙주의, 즉 우파의 인종주의 내지는 파시즘의 역사법칙주의와 좌파의 마르크스적 역사법칙주의가 모두 이런 유신론적 역사법칙주의의 흐름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34) '최선의 추구 대신에 최악의 제거를 위해서 노력하라' 이 말은 포퍼가 강조해 마지않았던 사회철학의 명제였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 1부
(55) 포퍼는 형상이나 이데아에 대한 플라톤의 이론이 변화하는 세계의 발전에서 특정한 경향을 함축한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세상 만물이 계속해서 타락하지 않을 수 없다는 법칙으로 인도된다.
(61) 지배계급의 기원과 양육 및 교육에 대한 플라톤의 견해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우리의 분석에서 두 가지 주요한 초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포퍼는 강조한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플라톤이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 과거의 국가라는 것이다. 둘째로 명심할 것은 플라톤이 그 국가를 재구성하는 관점은 국가 안정의 조건에 대한 것이며, 그는 안정의 보증을 오직 지배계급 내부에서, 특히 계급의 단합과 힘에서만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74) 플라톤의 정치강령은 다음 두 가지 공식 중의 하나로 표현될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정치적 변화를 억제하라는 이상주의적 이론이고, 하나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자연주의적 이론이다.
(76) 포퍼는 플라톤의 정치강령은 전체주의와 비교해서 도덕적으로 우월하기는커녕, 그것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믿는다.
(81) 전체적으로 포퍼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플라톤의 정의론은 그 시대의 평등주의적, 개인주의적, 보호주의적 경향을 극복하고 전체주의적 도덕이론을 전개함으로써 인종주의의 주장을 재확립하려는 의식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그는 평등주의를 논증으로써 논파하는 대신, 인도주의적 감정을 자연적으로 우월한 주인종족의 전체주의적 지배노선에 성공적으로 동원했다. 그에 주장에 의하면, 이러한 계급특권은 국가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특권들이 정의의 본질을 이룬다.
(110) 포퍼의 결론은 이것이다. 탐미주의와 급진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이성을 던져버리게 하고, 그 대신 정치적 기적을 바라는 절망적인 희망을 갖도록 한다. 이것은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도취 상태에서 솟아 나오는 낭만주의이다. 그러나 항상 이성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낭만주의는,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려는 선한 의도가 있다 해도, 단지 하나의 지옥을 만들 뿐이다.
(116) 포퍼는 열린사회에 대한 신념과 인간에 대한 신념, 평등과 정의에 대한 신념과 인간 이성에 대한 신념에 가장 위대한 공헌을 한 자는 소크라테스라고 본다.
(119) 우리가 플라톤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그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정치적 변화를 억제하는 것은 치료가 아니다. 그것은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 우리는 결코 소위 닫힌사회의 순진함과 아름다움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중략) 결론적으로 포퍼는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 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성을 사용하여 안전과 자유를 위해 계획하면서 미지의 세계,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 2부
(129)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헤겔은 전체적 추세는 이데아로 향해 가는 것, 즉 진보라고 가르쳤다. 헤겔의 역사법칙주의는 낙관적이다.
(143) 심리주의 교설에 반대하여 자율적 사회학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제도주의적 견해를 제안한다. 그들은 어떤 행동도 동기에 의해서만은 설명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지적한다. 동기가 설명에 사용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상황, 특히 환경을 참조하는 식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인간 행동의 경우에는 환경은 대체로 사회적 성질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행동은 사회적 환경, 사회적 제도와 그것들의 사회적 기능방식에 대한 참조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
(152) 계급의 역사가 반드시 마르크스적인 의미의 계급투쟁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같은 계급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이 갖는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고려해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160) 우리가 계획을 너무 많이 하면, 우리가 국가에 너무 많은 권력을 부여하면, 자유가 상실된다. 이것은 계획의 종말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고찰은 우리에게 점진적 사회공학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며, 유토피아적 혹은 전체적 방법을 거부하게 한다. 또한 이런 고찰은 어떤 이상적 선을 수립하는 것보다 구체적인 악과 투쟁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게 한다. 국가간섭은 자유의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것에만 제한되어야 한다.
(161) 그는 '누가 통치자가 되어야 할 것인가'하는 해묵은 물음은 '통치자들을 우리가 어떻게 길들일 수 있을까'하는 보다 실질적인 물음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 추종자들은 깨달을 수 없었다고 비판한다.
(196) 이제 사회과학이 가야 할 길은 재치있는 말장난을 내던지고, 모든 과학에 근본적으로 공통된 이론적 방법의 지원을 받아 우리 시대가 당면한 실천적 문제들을 붙들고 늘어지는 길이다. 포퍼가 말하는 방법은 시행착오의 방법이며, 가설을 만들어 그것을 실제적 실험에 회부해보는 바업ㅂ이다.
(211) 그는 '실제로 일어났던 것과 똑같은 과거'의 역사란 없다고 주장한다. 오직 역사적 해석이 있을 뿐이며, 어느 해석도 최종적일 수 없다.
(212) 역사법칙주의의 주장과는 다르게 인류의 역사란 없다.
(214) 포퍼는 사실과 결정의 이러한 이원론은 근본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자체는 아무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사실은 우리의 결정을 통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역사법칙주의는 이러한 이원론을 무너뜨리려는 많은 시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역사법칙주의는 합리성에 대한 절망과 행위의 책임에 대한 두려움에서 탄생한다. 그것은 천박한 희망이며 천박한 신앙이다. 그것은 도덕에 대한 강한 예찬과 성공에 대한 경멸로부터 솟아나오는 희망과 신앙을 사이비 과학으로부터 나오는 확실성으로 바꾸려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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